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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셀프 (self)

썰팔이 블로그 2019. 8. 6. 07:20

사람은 누구나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습니다. 세상에 장점만 있는 사람은 없고 단점만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저도 그렇고 누구든 그럴 겁니다. 그동안은 광인에 대해서 매우 읊어보았는데, 이번에는 저에 대해서 읊어보려고 합니다. 

 

남이 봤을 때 저의 캐릭터는 스스로 도를 구하는 구도자, 예언자, 선지자, 신선(?) 같은, 일의 원리나 순리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구도자라는 말이 아니라, 제가 남에게 그런 느낌을 준다는 말입니다. 옛날 같았으면 마을에서 대접받았을 캐릭터입니다. 왜냐면 옛날에는 벼락이 왜 치는지, 지진이 왜 나는지를 설명해주는 사람이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는 입을 함부로 놀리는 사기꾼 되기 십상일 것이니 항상 조심하려고 합니다. 

 

저는 저 자신을 들여다보는 눈이 매우 발달한 사람입니다. 어릴 적부터 그랬습니다. 자기를 들여다본다는게 누구 표현을 빌자면 메타인지인데, 좋은 의미로만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저를 감시하는 사람이 평생 내내 붙어다닌다는 뜻입니다. 저는 '나'와 '나를 관찰하는 나'의 역할이 명확히 분리되어 있는 인간형입니다. '나를 관찰하는 나'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주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기방어적인 사람입니다. '나를 관찰하는 나'가 '나'를 보호합니다. 자기방어야 사람이면 누구든지 하는 것이지만, 저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스팔트 도로같은 인간형입니다. 하늘에서 어떤 씨가 떨어지든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떨어져 나가고 맙니다. 어떤 공격도 튕겨내지만, 동시에 어떤 남의 손길도 튕겨냅니다. 좋게 말하면 이성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정나미가 없습니다.

 

저는 남에게 장점을 보이려고 하는 것보다 남에게 단점을 안 보이게 하려고 삽니다.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자리를 쉬이 내어주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단점이기도 하지만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모조리 말로 기술하고 이론을 만들려고 듭니다. 성격이기도 하고 습관이기도 합니다. 지금 길게 적고 있는 이 글 처럼요. 틀리는 것도 있을 것이지만 맞는 것도 많은 편입니다. 

나루토의 선생의 친구의 아버님 왈

저는 자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못살게 구는게 아니라, 이런 식이다 저런 식이다 하면서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이론을 만듭니다. 그래야 스스로 안정되었다,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미래에 대해서 해야 할 것들을 강요하는게 아니라, 원리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예컨대 성적이 낮으면 다음에는 이렇게 공부해야지 저렇게 공부해야지 공부량을 늘려야지 라고 강요하는게 아니라, 성적이 낮게 된 원인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원리만 알면 나머지는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일의 이후를 보는게 아니라 이전을 봅니다. 머리가 그런 생각으로 들어차 있습니다. 

과거 나   ->  현재 나        ->      미래 나

원리 (~로부터) -> 현상 (~이다) -> 당위 (~해야한다)

 

저는 다른 사람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제가 저를 대하듯 저는 남을 대합니다. 모든 행동을 이론으로 이해하려고 든다는 말입니다. 남에게 앞으로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데, 저러한 행동/발언은 ~로부터 나왔을까? 라는 짐작을 하고, 그 행동이 나올 수 밖에 없었을 뒷배경의 이론을 만들려고 듭니다. 습관이기도 하고 성격이기도 합니다. 그래야 스스로 납득을 하여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제 불안을 해소하려는 자기방어기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생각이 발달해있습니다. 잠을 잘 때 외에는 항상 뭔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저 자신에 대해서입니다. 나 아닌 것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상태를 글로 표현하는 (지금 하는 일) 일에 익숙합니다.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느낌도 글로 캐치하려고 듭니다. 그래서 이런 것도 구사할 줄 알게 됩니다. 남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게 아니고, 남이 이런 맥락이다 저런 맥락이다 식으로 말하는, 남의 맥락을 적는 글입니다. 

 

안쓰러움

광인은 대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겁니다. 같이 다니는 그분이 혜안이 훌륭하고 존경스럽다고 하셨지요. 고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요. 사람을 존경하면 하는거지 고졸은 왜 자꾸 그렇게 강조하셨나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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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행복해지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누가 저에게 주는 선물을 잘 못 받아들입니다. 어려서부터 불안정한 (unstable) 환경에 자주 놓이다 보니, 정서적으로 풍요롭고 안정된 상황을 못 견뎌 합니다. 불안한 행복보다 안정된 불행을 선택한다는 식입니다. 안정된 행복이라는 개념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가끔 찾아와서 언제든 깨질 수 있는 행복이라면 차라리 지금 내 손으로 얼른 깨어 부수겠다는 태도를 갖습니다. 그러면 불행하더라도 안정된 것이니까요. 이 얘기를 다 하려면 어릴 적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또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예전에 했던 이야기로 링크를 붙여서 갈음 해봅니다. 

 

저의 어릴 적 스토리를 읊어봅니다.

저는 1987년 4월 생입니다. 나이는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어릴 적 스토리를 읊어봅니다. 약팔겠다는 것은 아니고, 썰을 풀겠다는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은행원이셨고, 술을 좋아하셨습니다. 집안에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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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엄마로부터 감정을 배우고 아빠로부터 이성을 배웁니다. 모든 경우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상징적인 표현으로, 어머니는 마음으로 품는 사람이고 아버지는 규칙으로 훈육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저의 아버지가 저에게 해 줬어야 할 훈육의 역할을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없는 아버지 역할을 스스로 대신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규칙을 정하고 어긋날 때 처벌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집안의 안정을 지탱하는 아버지입니다. 저는 저를 정서적으로 안정시키려는 자신의 지배를 받습니다. 모든 것을 이론으로 정리하고 이해하려 든다는 맥락이 여기서 나옵니다. 사람의 인생에 관계 이라는 커다란  덩어리가 있다고  때, 저는 관계/감정/마음을 뜯어서 내버리고 일/이론/규칙만을 움켜쥐는 것입니다. 관계란 근본적으로 불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길었던 글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저는 자신의 불안을 글로 설명하여 이론으로 안정화시키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공부 (일) 이야기로 넘어옵니다. 공부가 직업인 사람이 연구자입니다. 저는 아직 연구자는 아니고, 연구자 지망생 (박사과정생) 입니다. 제가 요새 힘들어하는 것은 그런 부분입니다. 내가 공부하는 내용들에 대해서, 나는 배우가 아니라 관객인 느낌이 듭니다. 배우가 아니라 관객이라는 표현은, 저의 밖에서 저를 들여다보는 눈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일은 생각이 아니라 몸을 쓰는 일입니다. 농사라든지, 청소라든지요. 생각 (이론)이 너무 많아서 탈이 나고 있습니다.

 

영어공부를 하는데 외국인 파티에 가서 사람을 만나가며 구사하는게 아니라 문법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겉돈다는 느낌입니다. 제가 발을 딛고 있는 컴퓨터공학은,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정보 (information)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내가 목마른 것은 나의 안정이고, 나를 이해하고 이론을 만들어 해결하려고 들고, 결국은 나를 포함하여 사람이라는 것의 생태가 궁금한 것인데, 제가 하는 일은 기계에 관심을 두는 사람에게나 적합한 일입니다. 사람 아닌 것을 연구하려니 저의 마음에 합치가 안 되어 겉도는 것이지요. 공식적으로는 내 전공이지만 이것을 아무리 연구한들 내 갈증이 해소될 것이라 스스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같이 살지만 사이 안좋은 부부와 같습니다.

 

유학을 나오면 생각할 시간을 많이 갖는다는 장점도 있고, 사람의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지능을 연구한다는 핑계도 있고, 머신러닝 연구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저에게 유리한 것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덕분에 진짜 사람으로부터는 더욱 멀어져 고립되게 되었습니다. 천성은 글인데 후천적으로는 숫자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전자는 내 것이고, 후자는 아직 내 것이 아닙니다.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글로 하는 사고와 숫자로 하는 사고를 둘 다 할 줄은 안다는 것이 장점이기는 합니다.

 

이공계 번역기

졸꾸의 신은 멤버가 2500명이 되는 공개그룹이다보니, 정말로 여러 분야의 남녀노소가 어울려있습니다. 정말로 다른 생각과 글이 조화를 이룹니다. 누구처럼 자기 싫다고 차단해 내쳐버리는 집단이 아니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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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몇 마디로 사람 하나를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 자신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표현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저는 박사과정을 무사히 잘 마치면 최소한 당장 밥을 굶을 일은 없을 겁니다. 분야가 분야이기도 하고요. 좋은 논문 몇 개 쓴다면 졸업하고서 어느 직장에든지 갈 수 있을 것이고요. 실리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감정적으로는 그렇지가 않은가봅니다. 저는 아직도 수학이나 코드 라는 바닥에 뛰어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성과가 나지 않을까봐?

기대가 너무 커서?

잘 못할까봐?

 

그런 것도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라는 사람의 생태에 대해 고민하기를 놓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기계에 대한 관심이 발을 들일 자리가 제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몸은 두되 마음이 겉돌게 됩니다. 물에 뛰어들 때는 그냥 물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수영장 주변을 빙빙 돌면서 수영복을 입었다 벗었다 하면서 수영장 깊이를 재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지금 그런 상태입니다. 제가 전공하고 있는 머신러닝을 저는 아직 체화하지 못했습니다. 안하는 건 아니고요, 하기는 하는데 겉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해소하려면

 

  • 일의 범위를 줄이고
  • 일상에서 만연하게 (pervasive) 만들고
  • 실질적인/구체적인 (A를 B로 바꾸는 등) 일을 하고

 

그런 방법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방법들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태도인데, 내가 하겠다는 그것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태도가 저에게 필요합니다. 머신러닝이라는 것을 과정이나 결과가 아니라 시작으로 보는 태도입니다. 목적어 (머신러닝하자) 로 보는게 아니라, 주어로 보는 태도입니다. 머신러닝을 자기 인생의 주어로 놓고 있는 사람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일 테지만, 저는 아직 이것을 제 인생의 주어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 내 안에 내가 너무 가득 들어차있기 때문입니다.

 

홍콩 시위대가 진압당했다 라는 기사를 보면

홍콩 시위대를 자기 인생의 주어로 놓는 사람은 가슴이 아플 것이고

홍콩 시위대를 자기 인생의 목적어로 놓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을 것입니. 어떻게 되든 남의 나라 남의 이야기 이니까요.

 

같은 현상을 봐도 다르게 반응한다는 말입니다.

 

이러저러하게 주장하는 논문을 보면

그것을 자기 인생의 주어로 놓는 사람은 가슴이 움직일 것이고

그것을 자기 인생의 목적어로 놓는 사람은 남의 이야기로 들릴 테지요. 

 

사고의 시작에 그것을 둔다는 건 그런 것입니다. 이게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아직 저의 생업을 엮은 이야기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글로 풀어서 아는 것을 저의 전공 공부에는 제대로 반영을 못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현재의 고민입니다. 힘을 빼면 좋겠습니다. 다른 시작이 저에게 들어와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요.

 

아래는 제가 읽은 책에서 몇 문장을 발췌해봅니다. 제가 지향하는 그림입니다.

 

----------------------------------------------------- 인용 --------------------------------------------------------------

 

활의 명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궁사는 활의 위쪽 끝으로 하늘을 찌르고, 아래쪽 끝에는 비단실로 대지를 묶어 건다. 발사가 강한 흔들림과 함께 이루어지면 실이 끊어질 위험이 있다. 그러면 음흉하고 폭력적인 사람들에게 천지 간의 균열은 영원한 것이 되고, 인간은 하늘과 대지 사이의 구원 없는 세상에 머무른다.' 

                                                                                                                   - 마음을 쏘다, p. 54

 

그런데 그가 진심으로 생각하는 바는 글이 모두 완성된 다음 글에 덧붙인 것이 바로 규칙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사실에 앞서 상정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뒤이어 덧붙인 , 인과 관계에 대한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흉내 내야 하는 모든 작가들은 규칙과 관계없이 자신에게 옳다고 생각되던 것이 여전히 옳다고 생각되는가를 가늠해보고, 그렇게 생각되지 않으면 그것을 고친다는 것이 파이드로스의 생각이었다

                                                                                                      -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 317

 

 

"눈이 쌓이면 대나무 잎은 점점 고개를 숙이게 되지요. 그러다가 일순간 대나무 잎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데도 눈이 미끄러져 떨어집니다. 이와 같이 발사가 저절로 이루어질 때까지 최대로 활을 당긴 상태에 머물러 있으세요.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최대로 활이 당겨지면, 발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발사는 사수가 의도하기도 전에, 마치 대나무 잎에 쌓인 눈처럼 떠나가야 합니다."

                                                                                                                      - 마음을 쏘다 p. 78

 

"그러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나는 생각에 잠긴 물었다.

"참된 기다림을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배울 수가 있지요?"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이지요. 단호하게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버려서, 오직 의도하지 않은 긴장만이 남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의도를 가지고 무의도적으로 되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아직 어떤 학생도 그런 질문을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나도 답은 모르겠군요."

"그럼 언제 그런 새로운 연습을 시작하게 됩니까?"

"때가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 마음을 쏘다, p. 55

 

 

과학이나 기술 공학 분야에서 이는 드문 일이 아니다. 아니, 이는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상황이다. 별도리 없이 꼼짝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것이다. 전통적인 관리 방법의 측면에서 최악의 순간이란 바로 같은 순간이다. 너무도 난감한 상황이어서 당신은 그런 상황에 빠져들기 전에는 이에 대해 아예 생각조차 하려 하지 않게 마련이다.

이제 관리 지침서는 당신에게 아무런 소용이 되지 않는다. 아울러, 과학적 이성도 아무런 소용이 되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찾아내기 위해 어떤 과학적 실험을 필요도 없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는 너무도 명백하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홈이 망가진 나사를 빼내기 위해 어떻게 것인가에 대한 가설이지만, 과학적 방법은 같은 가설들 가운데 어떤 것도 당신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애초 가설들을 세울 없으니 과학적 방법도 동원할 길이 없다. 

...

지점에서는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이 뒤섞여 폭발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끌과 망치를 사용하여 옆면 덮개를 떼어내고 싶어 수도 있다. 필요하다면 대형의 쇠망치로 끌을 내려쳐 옆면 덮개를 떨어져 나가게 수도 있다. 당신은 이런 해결책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런 해결책에 대해 점점 오랫동안 생각을 하면 할수록, 모터사이클을 통째로 높은 다리 위로 들고 가서 아래로 내던지고 싶은 충동에 이끌리게 수도 있다. 그처럼 아주 작은 홈이 이처럼 완벽하게 당신을 패배시킬 있다니,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가. 

                                                                                                    -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495

 

 

"그것은 어떠한 숙고의 과정 없이 (zero) 무한이고, 무한이 영임을 인식하는 직관이다. 이러한 인식은 상징적이거나 수학적인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지각되는 경험이다. 그러므로 해탈은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자아의 한계를 넘어선 피안의 영역이다. 논리적으로는 긍정과 부정의 종합이고, 형이상학적으로는 불변의 존재가 생성 운동이고 생성 운동이 불변의 존재라는 직관적인 파악이다."

                                                                                                                - 마음을 쏘다 p. 8-9

 

 

그러던 어느 나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만일 ''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발사가 이루어질 있습니까?"

"<그것> 발사합니다." 그가 대답했다. 

" 말씀은 이미 여러 들었습니다. 그러니 다르게 질문을 보겠습니다. '' 이상 거기에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제가 무아의 상태에서 발사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있겠습니까?"

"<그것> 최대로 당긴 상태에서 기다리며 머무릅니다."

"그렇다면 <그것> 누구 또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그것을 이해하게 되면 나는 이상 당신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 스스로 경험하는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길로 가도록 돕는다면 나는 최악의 스승이며 자리에서 쫓겨나야 마땅합니다. 그러니 이상 이에 대해 논하지 말고 연습을 합시다!"

                                                                                                                  - 마음을 쏘다 p. 84

 

 

당신이 직면해 있는 난관은 너무도 엄청난 것이긴 하나 서양의 사유 체계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난관이며, 서양의 사유 체계가 경험해본 적이 없는 공간이다. 당신은 무언가 묘안을, 무언가 가설을 필요로 한다. 서양의 전통적인 과학적 방법은 불행하게도 어디에 가야 이처럼 필요한 가설을 좀더 많이 얻을 있는가에 대해 정확하게 말을 있을 만큼의 충분한 마음의 여유를 누려본 적이 없다. 전통적인 과학적 방법은 시력은 뛰어나지만 앞을 보는 헛똑똑이, 기껏해야 같은 헛똑똑이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다. 전통적인 과학적 방법은 당신이 어디에 있었던가를 확인하는 데는 훌륭한 역할을 한다.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진위를 테스트하는 데도 훌륭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당신이 가야 하는 곳이 과거에 당신이 가고 있던 곳으로부터 이탈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곳이 아닌 경우, 당신이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한다. 창조성, 독창성, 창의력, 직관, 상상력 - 한마디로 말해, "꼼짝 못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는 능력"- 완벽하게 영역 바깥쪽에 존재한다. 

                                                                                            -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496

 

 

동양의 모든 종교에서 지고의 가치는 타트 트밤 아시 (Tat tvam asi - 그대가 바로 그것이다 라는 산스크리트어의 교리에 놓인다.

-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258

 

 

정이 문혜군(文惠君) 위해 소를 잡은 일이 있었다. 그가 소에 손을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짓누르고, 무릎을 구부려 칼을 움직이는 동작이 모두 음률에 맞았다. 문혜군은 모습을 보고 감탄하여 "어찌하면 기술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포정은 칼을 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반기는 것은 '()'입니다. 손끝의 재주 따위보다야 우월합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만 보여 손을 없었으나, 3년이 지나자 어느새 소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지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눈의 작용이 멎으니 정신의 자연스런 작용만 남습니다. 그러면 천리(天理) 따라 쇠가죽과 고기, 살과 뼈사이의 커다란 틈새와 곳에 칼을 놀리고 움직여 소의 몸이 생긴 그대로 따라갑니다. 기술의 미묘함은 아직 번도 칼질을 실수하여 살이나 뼈를 다친 적이 없습니다. 솜씨 좋은 소잡이가 1 만에 칼을 바꾸는 것은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보통 소잡이는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이는 무리하게 뼈를 가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칼은 19년이나 되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것과 같습니다.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을 틈새에 넣으니, 널찍하여 칼날을 움직이는 데도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19년이 되었어도 칼날이 방금 숫돌에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근육과 뼈가 엉긴 곳에 이를 때마다 저는 일의 어려움을 알고 두려워하여 경계하며 천천히 손을 움직여서 칼의 움직임을 아주 미묘하게 합니다. 살이 뼈에서 털썩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같습니다. 칼을 일어나서 둘레를 살펴보며 머뭇거리다가 흐뭇해져 칼을 씻어 챙겨 넣습니다." 문혜군은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養生) 도를 터득했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 포정해우 丁解牛

 

 

"장인은 결코 정해진 일련의 지시에 맞춰 일을 하지 않아. 그는 일을 해나가면서 순간 어떻게 것인가를 결정하지. 바로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부산을 떨지 않아도, 그는 열중해서 일을 하게 되고 자기가 하는 일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게 . 그의 동작과 기계가 조화를 이루며 움직이는 것을 있지. 그는 활자화된 지시 사항 어느 것도 따르지 않아. 왜냐하면 현재 다루고 있는 재료의 성질이 그의 생각과 움직임을 결정하기 때문이야. 동시에 그와 생각과 움직임이 다루고 있는 재료의 성질을 바꾸게 되지. 재료와 그의 생각이 변화의 과정에 함께 변화하는 셈이지. 마침내 재료가 다루기에 적당한 것이 되는 동시에 그의 마음이 평온해질 때까지 말이야." 

                                                                                                -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 301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시선에는 자존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는 산행과 자존심을 초월한 하는 산행이 같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종류의 사람이 모두 걸음 걸음 발길을 옮긴다. 사람이 모두 동일한 속도로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사람 피곤할 휴식을 취한다. 휴식을 취하고 나면 사람 모두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차이란 실로 엄청난 것이다. 

 

자존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산행을 하는 사람은 통제가 되지 않는 기계와 같은 존재다. 그는 한순간 너무 빠르게 발을 내딛거나 한순간 너무 늦게 발을 내딛는다. 그는 필경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아래를 비춰주는 아름다운 햇살을 즐기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흐트러진 발걸음이 자신에게 지쳐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때조차 계속 걷는다. 그도 이따금씩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그는 조금 전에 보았기 때문에 앞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앞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고자 애를 쓰면서 산길을 올려다본다. 

 

그는 상황에 맞춰 걷기보다는 너무 빨리 가거나 너무 느리게 간다. 그리고 이야기를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어딘가 다른 , 무언가 다른 것에 관한 것뿐이다. 그는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는 여기를 거부하고, 여기에 대해 불만을 느낀다. 한결 위에 있기를 원하며, 일단 그곳에 도달하면 그곳은 다시 '여기' 것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불만을 느낀다. 그가 찾고자 하는 , 그가 원하는 것은 모두 그의 주변에 있지만, 그것이 바로 그의 주변에 있다는 이유 때문에 그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목표가 외부에 있고 멀리 있다고 상상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육체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쏟아붓는 노고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현재 크리스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378

 

 

 

 

 

하지만 나는 아주 지독하게 더운 어느 날에 있었던 일을 기억한다. 내가 일에서 해방되어 존과 함께 미네소타의 새비지로 갔을 때였다. 시간 가량 어떤 술집에 들어갔다 나오니 모터사이클이 너무 뜨거워져 있어서 올라탈 없을 지경이었다. 엔진의 시동을 걸고 떠나려 하는데, 존이 여전히 시동 축을 발로 밟아 펌프질을 하고 있다. 마치 정유 공장 옆에 있는 것처럼 휘발유 냄새가 지독하다. 엔진에 휘발유가 과다하게 들어갔다는 점을 알려주어도 괜찮겠다 싶어서, 그에게 휘발유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그는맞아, 휘발유 냄새가 나는군" 이라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펌프질을 한다. 그가 계속해서 뭄을 들먹이며 펌프질을 하고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얼굴이 땀으로 뒤범벅이 그는 정말로 숨이 차서 이상 펌프질을 없는 지경에 이른다. 보다 못해 나는 그에게 엔진에서 플러그를 빼낸 다음 플러그와 엔진 실린더를 건조시키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술집에 돌아가서 맥주 동안이면 충분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하지만 천만에! 그는 그따위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따위 일이라니?”

, 연장을 끌어내고 그런 귀찮은 일을 어떻게 하나? 엔진의 시동이 걸리지 않을 리가 없는데, 이거 아주 신품인 데다가, 하라는대로 하나도 어기지 않고 따라 했거든. 이것 , 그들이 하라는 대로 엔진에 연료를 잔뜩 주입했단 말이야.”

연료를 잔뜩 주입하다니!”

사용 설명서에 그렇게 하라고 되어 있어.”

그건 엔진이 냉각되어 있을 때지!”

글쎄, 우리가 적어도 30 가량은 술집에 들어가 있지 않았나?”

말이 이를테면 신경을 뒤흔들어놓는다. “이봐, , 오늘은 아주 더운 날이야.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엔진이 냉각되려면 그보다 시간이 걸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한다. “글쎄, 그렇다면 사용 설명서에는 그런 말이 없지?” 이윽고 엔진의 공기 흡입 조절 장치를 열고 두어 시도하자 시동이 걸린다. “ 같은데.” 즐거운 듯이 그가 말한다.

알겠지만 말이야엔진 시동이 그처럼 걸리지 않으면속에서 열불이 나서 주체할 없게 . 편집광처럼 거기에 매달리게 된단 말이야.” 

-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38

 

 

정비소의 분위기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들과는 달랐다. 한때는 모두가 역전의 고참 병사와도 같아 보이던 이들이 정비사들이었는데, 이제 그들은 어린아이들 같아 보이는 것이었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크게 라디오를 틀어놓은 채 익살을 떨며 떠들어대고 있던 그들은 나를 안중에 두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내게 다가와 피스톤이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곧바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태핏 (tappet)이 문제로군.”

태핏이라니? 어떤 결과에 이를 것인가에 대해 그 당시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2주 뒤에 수리비로 무려 140달러를 지불하고 모터사이클을 찾아왔다. 제대로 길이 들도록 천천히 몰되 속도를 조금씩 바꿔가며 조심스럽게 몰다가, 1천 마일을 달린 후 최고 속도를 내어보았다. 그랬더니 시속 75마일 정도에서 다시금 발작 현상이 일어났으며, 이전처럼 30마일 정도의 속도에서 정상이 되었다. 다시 정비소로 모터사이클을 끌고 갔을 때, 길을 잘못 들였다고 그들이 나를 나무랐다. 한참 논쟁이 오간 후에 결국 다시 한 번 점검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다시 한번 엔진을 분해 수리한 다음, 이번에는 직접 고속 주행 실험을 해볼 요량으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모터사이클을 몰고 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모는 동안에 발작 현상이 일어났다. 

세번째로 분해 수리를 하고서도 안되자 두 달 후에 그들은 실린더를 새것으로 바꾸고 특대형의 카뷰레터 분사기를 장착했다. 또한 가능한 한 엔진이 과열되지 않도록 점화 시간의 간격을 늘려놓았다. 그런 다음 나에게 “빨리 달리지 마세요”라는 충고까지 잊지 않았다.

기름때로 뒤덮여 있는 내 모터사이클의 시동을 걸어보았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플러그에 연결되는 전선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연결한 후 다시 시동을 걸어보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진짜 태핏에서 나는 잡음이 들렸다. 조정을 해놓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을 지적했더니, 아이 하나가 조임 간격을 조절할 수 있는 스패너를 갖고 왔다. 하지만 간격을 잘못 맞추어놓은 채 스패너로 알루미늄 판으로 된 태핏 덮개 두 개를 모두 급하게 돌리는 바람에, 두 쪽이 모두 망가지고 말았다.

“재고품이 있을 겁니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망치와 금속을 쪼아낼 때 쓰는 정을 갖고 와서, 태핏 덮개를 벗겨내기 위해 두들겨댔다. 정이 알루미늄 판으로 된 덮개를 뚫고 들어갔다. 그런데 그 녀석이 정의 뾰족한 끝이 거의 엔진에 닿을 때까지 계속 망치질을 해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다음에는 망치질이 완전히 빗나가서 엔진의 머리 부분을 내리쳤다. 결국 엔진 냉각판 날개 가운데 두 쪽이 떨어져나가고 말았다.

“그만하게.” 악몽 속을 헤매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점잖게 말했다. 

“새것으로 덮개 몇 개만 주게. 그러면 지금 이 상태로 그냥 가지고 갈까 하네.”

태핏에서는 잡음이 나고 태핏 덮개에는 구멍이 뚫린 채였지만, 그리고 모터사이클 자체가 온통 기름때로 덮여 있었지만, 가능한 빨리 그곳을 빠져나와 길로 접어들었다. 이젠 시속 20마일이 넘기만 해도 심한 진동이 느껴졌다. 보도 가장자리에서 기가 막힌 사실을 발견했다. 엔진을 고정시켜놓은 네 개의 나사 중 두 개는 이미 없어지고 셋째 나사가 막 빠져나가고 있었다. 엔진 전체가 단 한 개의 나사로 차체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오버헤드 캠에 연결된 체인을 조이는 나사 역시 없어진 상태였다. 이는 태핏을 아무리 조정하더라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악몽이었다. 

왜라는 의문이 계속해서 마음속을 떠나지 않게 되었으며, 현재의 ‘야외 강연’을 하게 된 주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 그들은 그렇게 엉뚱한 것을 건드려 모터사이클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았을까? 그들은 존과 실비아처럼 공학 기술로부터 도망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 자신이 공학 기술자들이었다. 그들은 시간을 내어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을 했고, 그것도 마치 침팬지같이 딴생각 없이 맡은 바 일을 했다. 사사로운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요컨대, 무언가 명백한 이유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그 악몽과 같았던 장소인 정비소의 내부를 떠올리게 되었고, 거기에 무언가 이유가 될 만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여 이를 생각해내느라고 애를 쓰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그들의 표정인 것 같았다. 그것을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들은 너그럽고 친절하며 느긋한 동시에, 어디에도 매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말하자면 방관자와 같았다. 어쩌다 그 정비소 안에 발길을 들여놓게 되었는데 그냥 누군가가 손에 스패너나 렌치를 쥐여 준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일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노력은 물론이고 “나는 정비사”라는 자부심도 없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오후 5시만 되면, 또는 8시간의 근무 시간만 채우면, 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단 한번도 더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임을 누구나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근무 중에서조차 벌써 자신들의 일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임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61

 

 

에게 돌파구를 제공한 개념은 (). ‘가치 이해해도 좋고 궁극적으로는 주객(主客) 분별을 지우는 불교적 () 통하는 개념을 통해 주인공은 정신과 물질, 본질과 현상을 축으로 하는 뿌리깊은 이분법적 사유를 한데 결합할 방도를 찾는다. “(낭만적 ) 질의 현시(고전적 ) 본래 하나이고, 이것이 품위를 갖추고 모습을 드러내면 서로 다른 이름(주체와 객체) 주어지나니.”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 447~448

 

 

주인공은 이를 다른 관점에서 말하기도 한다. “인간적 가치와 기술 공학적 요구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기술 공학으로부터 도망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 공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가로막는 이원적 사유라는 장벽을 무너뜨리는 있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516

 

 

하지만 이제 그에게 이런 생각은 사리에 맞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만일 그들이 옳고 그름을 미리 알고 있다면, 그들에게는 애초 강의를 택해 수강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강의 시간에 학생의 자격으로 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추정케 하는 것은 그들이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그들에게 말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선생으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이다. 강의실에서 학생 개개인이 창조성과 표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모든 생각 자체가 대학에 관한 모든 생각과 정말이지 기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 359 

 

 

다른 모든 과제를 수행할 그러하듯, 모터사이클을 놓고 작업을 해야 일은 마음의 평화를 계발하여 자신의 자아와 자신의 주변 환경이 분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이외의 다른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된다. 마음의 평화는 올바른 가치를 낳고, 올바른 가치는 올바른 생각을 낳는다. 올바른 생각은 올바른 행동을 낳고, 올바른 행동은 고요함이 물질적으로 현현(顯現)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그런 작업-, 누가 보더라도 확연히 감지할 있을 만큼, 모든 것의 중심부에 고요함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작업- 낳는다. ... 만일 우리가 세계를 개혁하고자 한다면, 그리하여 이를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일은 무엇일까. 우선 정치적 성격을 인간관계를 논의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일이 없다는 것이 생각이다. 인간 관계는 주체와 객체 양자 사이의 관계로 가득 , 필연적으로 이원론적인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오로지 개개인의 가치가 올바를 때만 사회적 가치는 올바른 것이 된다. 세계를 나은 것으로 만드는 일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우선 우리 자신의 마음과 머리와 손이고, 여기에서 시작하여 외부를 향해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 526

 

 

하지만 탄소 결합 방식에 대한 동적인 선택이라는 발명품은 단지 종류의 진화 전략에 해당하는 것일 뿐이다. 다른 종류의 진화 전략은 이제까지 발명한 것을 어떻게 보존하는가와 관련된 것이다. 만일 동적인 진보가 자신을 보호하는 필요한 모종의 정적인 패턴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이로 인해 진보가 이루어지기 전의 상태로 퇴보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동적인 진보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진화는 단순히 끊임없이 앞을 향해 움직여가기만 하는 과정일 수는 없다. 이는 또한 역회전을 막는 미늘 톱니바퀴 장치의 움직임과 같은 것이어야만 한다. 말하자면, 새로운 경사면을 따라 올라가는 동적인 움직임이 이루어진 다음, 결과가 성공적인 것으로 판단되면 이제까지 얻은 성과물이 유실되지 않도록 걸쇠를 거는 정적인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일어서 새로운 동적인 진보가 이루어지고, 또다시 걸쇠를 거는 정적인 과정이 뒤를 이어야 한다.

 - 라일라 p.284

 

 

" 아주 많은 세계를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어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내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말하는 건지 나도 모르지만.... 아무튼, 아주 많은 세계가 안에 있어서, 건드리기만 하면 잠시 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게 돼요.... 내가 가서 놀곤 하던 할아버지 댁에 있던 것들이 그런 거죠. 그리고 내가 한때 키웠던 개도 그렇고.... , 그런 거죠. 어쩌다 누군가하고 그걸 함께 나눌 있을 때를 제외하면, 누구한테도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런 것들이에요.

- 라일라 p. 250

 

 

예술사가가 자신의 학생들을 박물관으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서 그들의 눈에 띄는 것의 역사적 측면이나 기교적 측면에 대해 논문을 쓰게 하고, 그런 일로 년을 보내게 다음 그들에게 아주 훈련된 예술가임을 인정하는 학위를 수여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들은 결코 손에 붓이든 나무망치든 끌이든 들어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예술사가 전부인데도 말이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상황인가. 

 

하지만 아무리 우스꽝스럽게 들릴지 몰라도 철학임을 자처하는 철학학의 영역에서는 바로 이런 상황이 그대로 벌어지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철학적 사색을 것이 기대되지 않는다. 만일 학생들이 철학적 사색을 하면 선생들은 이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아마 선생들은 학생들의 글을 J.S.밀이나 칸트 또는 그와 비슷한 사람들의 글과 비교한 다음, 학생들의 글이 엄청나게 열등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런 종류의 글쓰기를 포기하라는 충고를 것이다. 학생 시절 파이드로스는 자신의 철학적 사유에 너무 집착하는 경우 "크게 다칠 "이라는 경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문학 연구, 음악학, 예술사, 철학학이 대학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그것들을 가르치기가 쉽기 때문이다. 선생은 그저 어떤 철학자가 말한 것을 복사기에 복사하듯 복사해서 늘어놓은 다음, 학생들에게 이를 놓고 토론하게 하고 이를 암기하게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학기말에 가서 학생들이 이를 잊어먹은 경우 낙제를 시키면 그것으로 끝이다. 실제의 그림 그리기와 작곡과 창작은 가르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는 대학의 안쪽에 거의 발을 들여놓을 없다. 진정한 철학은 아예 입장이 거부된다. 철학학 학자들은 때때로 철학을 창조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도 하나, 이를 부차적이고 종속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문학 연구자들이 창작에 대한 자신들의 관심을 부차적이고 종속적인 것으로 치부하듯 말이다.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은 철학을 창조하는 일을 자신들의 진정한 과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파이드로스는 철학학을 회피해왔다. 한편으로는 이를 좋아하지 않아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학이라는 수레를 철학이라는 앞에 갖다 놓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철학학 학자들은 수레를 앞에 갖다 놓을 뿐만 아니라 통상적으로 말의 존재에 대해서는 깡그리 잊는다. 그들은 당신에게 이렇게 충고할 것이다. 먼저 역사상 위대한 모든 철학자들이 뭐라 말했는가를 읽어라. 그런 다음에야 당신은 당신이 뭐라 말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여기에서 함정은 역사상 위대한 모든 철학자들이 뭐라 말했는가를 읽고 나면 당신의 나이는 최소한 200살이 것이라는 있다. 하나의 함정은 위대한 철학자들은 뛰어난 설득력의 소유자들이라서 순진하게 그들의 글을 따라 읽다 보면 당신은 그들의 말에 완전히 넘어갈 있고, 결국에는 그들이 틀린 것이 무엇인지를 결코 파악할 없게 된다는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파이드로스는 이따금 수레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자체에 매혹되곤 했다. 그가 다양한 철학학의 수레들에 담긴 내용을 검토하는 최상의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은 이것이다. 먼저 당신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라. 그다음 어떤 위대한 철학자들이 당신과 의견을 같이하는가를 찾아라. 많지는 않지만 그런 철학자들이 어딘가에 있게 마련이다. 그들이 하는 말에 갈채를 보내고 그들의 적에게 야유를 보낼 있기 때문에, 철학자의 글을 읽는 것이 당신에게 한결 재미있는 것이 있다. 또한 적들이 그들을 공격하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 당신은 그들의 뒤편에 서서 어깨 너머로 약간의 훈수를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그들이 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 아니면 그른 길인지에 대해 진정한 흥미를 느낄 있게 것이다.

 

같은 기법을 동원하는 경우, 당신은 여느 철학학 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윌리엄 제임스와 같은 철학자들에 접근할 있다. 제임스를 읽기 전에 미리 창조적인 사유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당신은 그냥 그의 생각에 순응하여 읽어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것과 당신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사이의 대조 과정을 통해, 당신은 온갖 종류의 새롭고 신선한 생각들을 터득하게 이다. 또한 당신은 그의 사유가 이끄는 막다른 골목길에 이르러서도 좌절하지 않을 것이고, 때때로 그와 같은 골목길을 우회해 가는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파이드로스의 독서 과정에 일어났던 일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제임스의 철학이 완벽하지 않다는 , 질의 형이상학이 완벽하지 않은 제임스의 철학을 보다 나은 것으로 실질적인 개선을 있으리라는 , 그것이 바로 파이드로스가 받은 확고한 인상이었다. 그건 그렇고, 하버드 대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철학자의 사유를 좀더 완벽한 것으로 개선할 있다는 식의 생각에 젖어 있는 무례한 친구가 있다니, 통상적인 철학학 학자라면 이에 분개해 마지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파이드로스가 읽은 바에 비춰 판단하건대 제임스 자신은 그러한 노력에 대단히 열광적인 반응을 보일 법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쨌거나 철학자였던 것이다.

-라일라. p. 607-608

 

 

모터사이클이란 바로 그런 것일 뿐이다. 말하자면, 강철 작업을 통해 구체화된 개념 체계다. 모터사이클의 어떤 부분도, 어떤 형태도, 누군가의 마음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라고는 없다.... 내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강철을 가지고 작업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다음 사실을 깨닫는 어려움을 느낀다. , 모터사이클이란 일차적으로 정신적 현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금속이라고 하면 무엇이든 이미 정해진 형상을 연상한다. 말하자면, 파이프라든가 금속 막대기, 철제 대들보라든가 연장이나 부품 등등 모두가 고정되어 있어 어찌할 없는 것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기계로 금속 가공을 해본 사람, 주물 공장이나 대장간에서 일을 해본 사람, 용접 작업을 해본 사람은강철 어떤 형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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